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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4   수능시험 보는 정원이를 생각하며 

 

수능시험 보는 정원이를 생각하며
+   [스승의사랑]   |  2011. 9. 14. 11:49  

건강한 몸으로 평상시의 실력 마음껏 발휘하길


01.11.02 20:02 ㅣ최종 업데이트 01.11.02 21:19



며칠 전의 일입니다. 빈 교무실에서 혼자 아침 수업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선생님!" 하고 불렀습니다.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니 정원이가 웬 쇼핑백을 들고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하복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담임 선생님이 후배들에게 교복 물려주는 운동에 대해 아이들에게 말을 한 모양입니다.


쇼핑백을 받아서 교복 모아둔 곳에 갖다 놓고 꺼내 보니 윗옷과 치마 두 벌이 나왔습니다. 3년 동안 두 벌을 입었거나 아니면 친구 것이랑 같이 가져온 것 같습니다. 정원이에게 됐다고 웃으면서 말하고 돌려보냈습니다. 추운 날씨가 순간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정원이와 올 3월에 3학년 6반 교실에서 토요일 날 만났을 때 나도 그 아이도 서로 놀랐습니다. 2학년 때 분명 이과반 학생이었는데 문과반인 6반에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문과가 모두 여섯 반인데 난 6반만 1주일에 한 시간만 들어가게 시간표가 작성되어 있어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에서 정원이를 반갑게 만난 것입니다. 그는 2학년 말경에 문과로 옮겼다고 합니다.

정원이와 처음 만난 것은 작년 5월 초입니다. 내가 특별활동부에서 동아리와 학교 축제를 맡아서 일을 하고 있을 때에 그를 만난 것입니다. 정원이는 학생회에서 총무차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실무자인 나와 함께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늘 밝게 웃는 인상이기 때문에 그와 만날 때마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나고 일이 잘되었습니다.

6월에 동아리 야영을 학교 운동장에서 하기로 결정하여 본격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참가 동아리와 여러 번 만나 세부 사항을 점검했습니다. 정원이는 큰 일꾼이었습니다. 나는 나중에 종합하여 부장 선생님께 결재만 맡으면 됐습니다.

일이 쉽게 되도록 정원이가 발로 뛰어다닌 것입니다. 나에게 와서 늘 "네, 네"하면서 즐거운 표정으로 일의 진척 상황을 보고하고 계획을 얘기했습니다. 그 아이 덕분에 1박 2일간에 걸친 동아리 야영이 성공리에 끝났습니다.

진짜 일은 9월부터 시작됐습니다. 바로 학교에서 가장 큰 행사인 축제 준비입니다. 강당이 없는 관계로 운동장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아주 많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3학년 수능이 끝난 뒤에 축제를 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학생회 간부들과 9월 초부터 수없이 만나서 계획을 짜고 수정을 하기를 거듭했습니다.

이번에도 정원이의 진가가 또 다시 빛을 냈습니다. 대부분의 동아리가 1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양도 엄청났습니다. 30여 개의 동아리 부장을 일일이 만나 진행 사항을 전달하고, 발표에 필요한 내용들을 정리하여 내게 가져왔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고 거의 열 번 정도를 오가면서 정원이는 그 힘든 일들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언제나 변함 없는 그 아이의 밝은 표정입니다. 아무리 자신들의 축제라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환한 모습으로, 적극적인 자세로 열심히 하기는 사실 불가능하거든요.

일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정원이는 나와 같이 최종적으로 축제 팸플릿 작성에 들어갔습니다. 참가하는 동아리 부원들의 이름이 모두 들어가게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난 정원이에게 반반씩 맡아서 하자고 한 뒤에 내가 맡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정원이에게 그것을 주니 집에 가져가서 아주 보기 좋은 모양으로 완성하여 가져왔습니다.

그 이후에 인쇄소에서 팸플릿이 왔을 때에 얼마나 흐뭇했는지요. 정원이도 그것을 보고 활짝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의 정성이 아름답고 예쁜 팸플릿을 완성시킨 것입니다. 얼마 뒤에 열린 학교 축제는 모든 학생들의 적극적인 동참 아래 멋지게 끝났습니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의 일입니다. 공휴일이지만 일직인 관계로 학교에 갔습니다. 아내는 두 아이와 같이 동네 친구 아이들이랑 인천교육대학교에 갔습니다. 내가 가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근무하며 한 바퀴 교실 복도를 도는데 3학년 6반 교실에 정원이가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공부하러 나온 것입니다. 나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곧 책을 펴들고 열심히 공부하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수업 시간에 부족한 나의 강의를 열심히 듣는 정원이, 특히 공부보다도 여러 가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 고개 끄덕이며 자주 동의를 표시했던 고마운 정원이가 최선을 다해 공부하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습니다.

복도를 몇 번 왔다갔다한 다음에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과 점심을 들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왔을 때의 일입니다. 행정실 문이 열리더니 정원이가 웃으면서 들어왔습니다. 브라보콘을 두 개 들고 인사를 하며 우리 앞에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며.

정원이가 선생님들을 위해 사온 것입니다. 아마 밖에서 점심을 친구랑 먹고 들어오면서 우리들 생각이 나서 사온 것 같습니다. 그 행동이 너무 착하고 예뻐서 손이라고 잡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원이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브라보콘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정원이가 이제 수학능력시험을 5일 후면 봅니다. 내일 토요일 3교시가 정식으론 마지막 수업입니다. 내일 수업 시간에 들어가서도 열심히 수업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 잘 유지하여 시험 보라고 당부할 것입니다. 정원이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내 강의에 귀를 쫑긋이 세우고 열심히 들을 것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 공부를 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정원이의 성격으로 보아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새롭게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리라 확신합니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 방식을 지니고, 늘 주위를 돌아다보는 착하고 예쁜 정원이이기 때문에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13년째 교사 생활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그 가운데 여러 아이들이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강한 인상을 남겨 주었습니다. 정원이도 나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부디 건강한 몸으로 12년 동안 연마한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수학능력시험 보기 전에 예쁜 종이에다가 붓펜으로 정원이에게 글을 써서 주겠습니다. 나의 고마운 마음도 전하고, 정말로 건강한 몸으로 열심히 시험 보라고 쓰겠습니다. 시험이 끝난 다음에 한 번 정원이의 포부에 대해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몇 시간 남지 않은 6반 수업은 그동안 진도 때문에 못한 여러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로 부담 없이 해나갈 예정입니다. 그 시간들도 아이들이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잘 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2011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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